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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혼탑

충혼탑

충혼탑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산화하신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빗살무늬 토기 모양의 기념조형물입니다.

충혼탑 동상

임병직 윤봉길 김좌진 이동녕 유관순 한용운 이종일 민종식 이상재

임병직 동상

조형물 소개

일제강점기 미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임병직 선생의 동상이다. 미주 지역에서의 외교 활동을 반영해 양복 차림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동상 2,200x2,200x3,000/받침대 2,730x2,730x600
[재료]
  
브론즈, 렉산, 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93년 10월 26일 ~ 1976년 9월 21일
출생지
충남 부여
업적
일제강점기 미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8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한인 유학생들이 조직한 미주한인학생단을 발기하고 서기를 맡았으며, 191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한인대회의 서기를 맡아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같은 해 설치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임시의원을 역임했으며, 192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북미지역 대한인유학생회에 참여하였다. 1941년 조직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4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조직된 한인국방경비대(일명:맹호군) 참위로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에서 무관보 등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외교부 장관 등을 지내고 1976년 9월 22일 서거하였다.

윤봉길 동상

조형물 소개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거사를 벌인 윤봉길 의사의 동상이다. 일본군 요인들에게 수통형 폭탄을 던지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1,200x1,200x3,000
[재료]
  
브론즈, 화강석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908년 6월 21일 ~ 1932년 12월 19일
출생지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업적
1932년 4월 김구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고, 같은 달 29일 일제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전승 축하식을 개최하자 물통 모양의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시라카와 대장 등을 처단하였다. 이에 중국 국민당 총통 장제스는 윤봉길을 극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였으며, 그 결과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거사 직후 체포된 윤봉길은 같은 해 12월 18일 일본에서 순국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되었다.

김좌진 동상

조형물 소개

청산리대첩을 지휘하던 김좌진 장군의 동상이다. 독립군 사령관으로서의 강건한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1,200x1,200x3,000
[재료]
  
브론즈, 화강석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89년 12월 16일 ~ 1930년 1월 24일
출생지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신기마을
업적
1915년 비밀결사인 광복회에 참여한 뒤 1917년 만주로 이동하였다. 1919년 대한군정서사령부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이듬해인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1925년 이후 신민부와 한족총연합회 등을 조직·운영하며 북만주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1929년 7월 암살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되었다.

이동녕 동상

조형물 소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인 이동녕 선생의 동상이다. 국무령과 주석을 역임한 그의 중국 활동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1,200x1,200x3,000
[재료]
  
브론즈, 화강석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69년 ~ 1940년 3월 13일
출생지
천안시 목천읍
업적
1910년 경술국치를 기해 중국으로 망명, 간도에 한인자치기구 경학사를 만들었고 이를 발판으로 신흥무관학교의 건립과 운영에 관여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임시의정원 의장·국무총리·군무총장·국무령·법무총장·주석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에 힘쓰다 1940년 3월 중국 쓰촨성에서 폐렴으로 서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에 추서되었다.

유관순 동상

조형물 소개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다. 태극기를 높이 들고 앞장서는 모습으로, 일제에 맞선 강한 저항 의지와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족의 정신력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동상 3,500x3,300x7,500/받침대 2,730x2,730x600
[재료]
  
브론즈, 렉산, 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
출생지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업적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시위를 계획‧주도하였다. 시위 도중 부모님을 여의고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끝까지 저항하다 1920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옥중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되었고, 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승격되었다.

한용운 동상

조형물 소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였던 한용운 선생의 동상이다. 손에 「3·1독립선언서」를 든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1,200x1,200x3,000
[재료]
  
브론즈, 화강석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79년 8월 29일 ~ 1944년 6월 29일
출생지
홍성군 결성면
업적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 대표로 참여하였고, 「3‧1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작성하였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하였으며, 1927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과 경성지회장을 역임하였고, 1931년 조선불교청년동맹을 중심으로 불교계 청년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서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추서되었다.

이종일 동상

조형물 소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이종일 선생의 동상이다. 선언서를 들고있는 모습으로 3·1운동 당시 선생의 활약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동상 2,200x2,200x3,000/받침대 2,730x2,730x600
[재료]
  
브론즈, 렉산, 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58년 11월 06일 ~ 1925년 8월 31일
출생지
충남 태안
업적
천도교의 민족운동과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조직된 독립협회에 참여하였으며, 1898년『제국신문』을 창간하여 언론을 통한 국민 계몽에 힘썼다. 이후 보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사립 흥화학교와 국문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1906년 천도교에 입교한 뒤 천도교월보사 과장과 보성사 사장으로 취임하여 천도교의 민족운동을 주도했으며 1907년부터 2년여간 국문연구소 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보성사 사장으로 독립선언서 인쇄 및 배포의 책임을 맡았으며,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에 참여하였다. 1922년 3·1운동 3주년을 기념해 제2독립선언식을 추진하였고, 이후 1925년 8월 31일 서거하였다.

민종식 동상

조형물 소개

홍주의병을 이끈 민종식 의병장의 동상이다. 주먹을 쥐고 의병을 이끄는 모습으로, 굳센 의지와 애국심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동상 2,200x2,200x3,000/받침대 2,730x2,730x600
[재료]
  
브론즈, 렉산, 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61년 3월 4일 ~ 1917년 6월 26일
출생지
경기도 여주
업적
1906년 봉기한 홍주의병의 의병장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충남 정산으로 낙향하였다. 1906년 홍성과 청양 일대의 유림들과 의진을 편성하고 대장으로 추대되어, 3월 15일 예산의 광시장터(현, 예산군 광시면)에서 봉기하였다. 청양의 합천(현, 청양군 화성면)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패퇴했으나, 부여 지티(현,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서 다시 봉기하여 5월 19일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5월 20일 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에 결사항전했지만, 5월 31일 홍주성이 함락되었다. 이후 재기를 도모하다 11월 20일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순종 황제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1917년 6월 26일 서거하였다.

이상재 동상

조형물 소개

국권 수호와 민권 신장을 위해 힘쓴 이상재 선생의 동상이다. 강직한 인상을 통해 굳은 의지와 높은 기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규격]
  
동상 2,200x2,200x3,000/받침대 2,730x2,730x600
[재료]
  
브론즈, 렉산, 화강석, 스테인리스 스틸

인물 소개

출생과 순국
1850년 11월 29일 ~ 1927년 3월 29일
출생지
충남 서천
업적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 걸쳐 민족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독립협회의 주요 인물로서 국권 수호와 민권 신장에 힘썼다. 1905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의 교육부장을 맡아 청년 계몽에 기여했으며, 3·1운동 당시 일제에 체포되어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조선교육회를 창설하고 회장으로서 교육운동을 전개하였고, 1923년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한국인의 실력 양성을 위한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주도하였다. 1924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한 후 조선기자대회를 추진하였으며, 1927년 민족협동전선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신간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위해 힘쓰다가 같은 해 3월 29일 서거하였다.